조선 영조 당시인 1755년에 발간된 고양군지 (高陽郡誌)을 바탕으로 하여 1987년 고양군
지편찬위원회에서 고양군지를 다시 발간했습니다.
이 책자를 보면 고양군의 옛 절터 (寺址)편에 소화사지 (小華寺址)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기록의 주요내용은 "행주산성 위 한강 행호 (幸湖) 호숫가에 고려시대
부터 있어 온 소화사지 절터가 있다".라고 표기했습니다.
고려시대의 문인인 인빈 (印份) 선생이 지은 시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파초잎이 발 밖에서 우니
산에 비오는 줄 알겠고
돛대가 봉우리 위에 나오니
바다에 바람 있는 줄 알겠다.
이러한 기록을 토대로 현지를 살펴본 결과 일명 "행주 동굴" 부근의
작은 평지로 추측 됩니다. 현재는 소화사지 앞으로 행주산성 역사 누리길 (행주누리길)
이 개통되어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1593년에 있었던 행주대첩과 권율, 행주치마 등으로 알고 있지만
행주산성은 이로부터 1,000년 이전 삼국시대에 흙과 돌을 사용하여 쌓은 토석축
(土石築) 산성 입니다. 지금은 흙에 묻혀 있지만 행주산성의 정상인 덕양산 (성산)
정상부에 돌로 쌓은 석축이 잘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를 연결하는 고려시대의 소화사지가 기록으로
남은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행주산성은 삼국시대 부터 지금까지 중요한 문화유산, 전략적 요충지
였으나 우리는 지금까지 약 일주일간 머물고 단 하루만 전투를 벌인 행주대첩에만
큰 관심을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행주산성 경내를 잘 살펴보면 신라시대 행주기씨 (幸州奇氏)의 시조 탄생 유허비,
기감천 (奇甘川), 진달래 밭, 행주동굴, 행주수위관측소, 한석봉이 쓴 행주대첩비
등이 있습니다. 행복하고 좋은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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