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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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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호 [인터뷰]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김선자 신화연구소장

시스템관리자 2026-03-11 13

 

 

 

어려서부터 우리가 읽어왔던 신화들이 있습니다그리스로마 신화가 그것이지요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그리스로마 신화나 안데르센 동화반지의 제왕이나해리포터시리즈 등 서양의 신화와 마법담은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 중의 하나일 뿐 전부가 아닌데어느새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의 전부가 된 것은 아닐까요이제 동양의 신화동아시아 신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우리의 뿌리인 동아시아 신화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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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행신도서관 김지희 사서 제공


※ 2024 고양시립행신도서관의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화 속 동아시아강좌에 참여하며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김선자 신화연구소장을 인터뷰했습니다인터뷰는 지난 9월 10일 연세대학교 백양누리 지하 1층 <더 라운지>에서 3시간가량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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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백양누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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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 신화연구소장

 

질문:고양시에서 강의하거나 고양시민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으셨나요?

 

김선자소장(이하 김선자): 처음입니다.

 

 

질문신화강연을 들을 기회가 별로 없는데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신화연구소의 연구원과 소장님의 강의를 체계적으로 들을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행신도서관을 통해 고양시민들과는 첫 만남입니다고양시민들께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김선자제가 좋아하는 신화로 고양시민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 정말 반갑고 즐겁습니다강의 첫날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분이 오셔서 눈을 반짝이며 집중해서 들어주셔서 강의하면서 신이 났어요고양시와 신화를 통해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되어 기쁘고 감사합니다앞으로 고양시와 더 자주 인연을 맺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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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저도 동감합니다김선자 선생님을 여기서 뵙게 되다니 정말 감격스럽습니다몇 년 전에 해녀 관련 책을 찾다가 제주신화신화의 섬을 넘어서다』 를 읽고 동아시아신화와 제주신화의 연관성을 알고 감탄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그런데 행신도서관과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신화연구소는 어떻게 인연이 되었나요?

 

김선자: <길 위의 인문학프로그램을 통해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제가 연세대학교에서 <동아시아신화기행>이라는 교양 수업을 오랫동안 진행해왔는데학생들이 꽤 흥미를 갖고 들어주었어요우리 연구소의 이석구 선생님이 이 강좌를 외부에서도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셔서 시도해본 것인데마침 고양행신도서관에서 환영해주셨어요.

 

 

질문고양시에도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신화연구소와 연결된 것은 굉장한 행운입니다신화 강의를 통해 고양시민들이나 강좌를 듣는 시민들께 기대하는 부분도 궁금합니다.

 

김선자감사한 일입니다고양행신도서관과 잘 연결되어 우리 연구소 선생님들도 즐겁게 참여하고 있습니다원래 학교 강의는 신화와 역사의 관계에 관한 내용부터 시작합니다동아시아 지역에서 신화라는 단어가 원래부터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지요국가나 민족의 위대함을 말하기 위해 신화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이제는 좀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00여 년 전근대 시기 동아시아 3국의 세계사적 위치와 지금의 위치는 많이 달라져 있기 때문이지요신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자민족의 위대함이나 오래된 문명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아득한 옛날에 사람들이 신화 이야기를 시작할 때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아이들에게 전해줬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환경문제경제적 불평등이나 혐오문제 등을 단번에 풀 수 있는 명쾌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동아시아 신화 속의 지혜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동아시아 신화학이 그동안 역사나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좀 다른 방향으로즉 신화가 원래 갖고 있던 가치를 되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가장 오래된 지혜가 담겨있는 신화가 현대 인류가 맞닥뜨린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물론 동아시아 여러 민족이 전하는 신화들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이야기라는 생각도 드실 거예요그리스로마신화는 많이 알고 들어보셨지만만주나 윈난(雲南신화는 처음 들으실 것이기 때문이지요하지만 들으시다 보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데?”라는 생각도 하실 거예요신화가 단순히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실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주는 이야기라는 것을동아시아신화 강의를 통해 함께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질문:서울신문이나 경향신문에 기고하신 선생님 칼럼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고양시민들께도 동아시아신화를 통해 삶의 실제적인 지혜를 소개하고 싶으셨군요.

 

김선자맞습니다신화가 여러분의 삶에서 지혜의 등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신화는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또한 많은 지혜를 담고 있기도 해요우리가 힘겨울 때 이야기 속에서 위로와 힘을 얻기도 하잖아요그래서 저는 신화가 지혜의 등불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인생길을 걸을 때 신화 속의 지혜가 여러분의 길을 비추는 작은 등불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화학자이자 동아시아 신화전문가로서 이야기의 힘신화의 힘을 믿게 된 계기나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선자처음에 공부한 것은 문헌신화였어요동아시아에서 신화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게 근대, 20세기 초반입니다동아시아 근대 시기에 동아시아 3국이 처했던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신화가 특히 민족의 시조를 많이 소환했죠일본의 아마테라스중국의 황제(黃帝), 우리나라의 단군 등을 불러내면서 민족을 통합하고 민족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초기 신화학의 목표였어요그 이후 신화 연구는 대부분 문헌신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요.

 

그런데 중국답사를 시작하면서 소수민족 지역을 다니다 보니까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분량의 신화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중국의 소수민족 지역은 동아시아를 2천 년 동안 지배한 유가 사상이나 유교 이데올로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곳이에요기존의 문헌신화가 건국 시조를 중심으로 자국 문명의 위대함과 오래된 역사를 부각했다면소수민족 신화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어요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확장하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가 되죠.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곳은 산악지대나 초원사막고원 아니면 아열대 등 살기가 정말 열악한 곳인데그런 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의 표정이 정말 밝고 환했어요그분들의 소박한 삶의 자세와 환한 웃음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소수민족 신화를 공부해보니 알 수 있었어요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공존이었죠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되는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잘 사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분들은 중요하게 여기고 계셨죠소수민족 신화에는 그들의 환경에서 나온 공존의 지혜가 들어있어요실제 그들의 삶을 보며 느낀 것과 텍스트로 읽은 것이 맞아떨어진 거죠그때부터 소수민족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신화의 진정한 힘이 중국 소수민족 신화에 있다고 느꼈어요.

 

 

질문:신화의 힘을 믿게 된 계기가 중국의 소수민족 마을을 답사하면서 그들 속에 열악한 환경을 넘어서는 웃음과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소박한 삶에서 공존의 지혜를 경험하신 거네요.

 

김선자제가 읽어 온 소수민족 신화 텍스트와 삶이 일치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승해온 창세신화 등 신화 서사들을 텍스트로 채록한 것을 읽으면서 그들의 삶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 바로 텍스트란 사실을 알게 되었죠.

 

 

질문일상의 삶과 이야기가 일치하는 지점을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김선자구이저우(貴州)성 먀오족 마을에 갔을 때인 것 같아요아침에 사람들이 물 긷는 샘이 있어요그 샘물에 뚜껑도 있고요그 물을 긷기 위해 아침에 가장 먼저 샘에 가신 분은 물통을 샘물에 첨벙 바로 던져 넣지 않아요풀로 된 매듭을 먼저 샘물에 던져 띄우는데물의 신을 깨우기 위해서죠. “제가 물을 좀 길어 올릴게요.” 물의 신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긷는 거죠해발고도 2천 미터가 넘는 곳에 자리한 소수민족의 마을에서 물은 그들 모두를 살게 하는굉장히 소중한 존재죠물이 그들을 먹여 살리는 아주 소중한 신이라는 의식물에게도 예의를 표하는 삶의 방식이 신화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어요.

 

 

질문그러면 이제 제주신화로 이야기를 옮겨 볼까요제주신화 책을 쓰신 많은 학자가 있지만제주신화와 동아시아 신화와의 관련성을 면밀하게 짚은 선생님의 책제주신화그 섬을 넘어서다는 제게 굉장히 신선하고 깊은 통찰을 줬어요사실 이미지즉 형상은 신화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잖아요사람들의 무의식에까지 깊이 각인되니까요창세여신인 설문대할망을 쪽진 할머니로 이미지화하니까 젊은 여성이나 다른 형상으로 생각할 여지가 처음부터 차단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김선자현용준 선생님이 쓰신 제주신화의 수수께끼를 읽으면서 제가 그동안 공부해온 동아시아 신화와 제주신화를 연결해봤어요현용준선생님이 제기하신 의문들에 대해 저 나름의 답을 해본 것이고그것을 바탕으로 국내 연구자들이 더 많은 연구를 해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주신화는 고립적으로 전승되는 것이 아니에요사람이 오고 가며 이야기도 오가는 것이라서 유라시아대륙의 모든 신화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제주신화도 마찬가지예요제주가 가진 문화적 색깔 자체가 다양하잖아요특히 남북쪽의 신화적 요소들이 섞여 있고맥락이 복합적이라 제주가 중요한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창작자로서 설문대할망을 만나러 제주 돌문화공원에 갔을 때 창세여신의 강렬하고 진취적인 에너지를 느끼고 싶었어요그런데 오백장군 형상이 중심이고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는 물장오리 조형물을 크게 만든 것에 실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김선자좀 안타깝죠오백장군 전설은 설문대할망 이야기의 원형이 아니라 후대의 변형이라고 생각해요중국 소수민족 창세여신과 설문대할망의 원형-설문대할망의 호칭과 할머니’ 형상창세여신과 비극성에 관한 문제이라는 제 논문의 말미에도 썼지만동아시아의 창세여신은 비극적인 신격을 갖고 있지 않아요대부분의 창세여신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낙천적이에요중국의 소수민족 중 야오족(瑤族)의 창세여신이 있어요신이 인간을 빚을 때 보통 흙으로 빚잖아요이 여신도 흙으로 빚어봤는데인간이 안 되고 항아리가 돼버려요. “재료가 잘못 됐나?”하고 풀로 만들었더니 메뚜기가 되고밥풀로 빚었더니 술이 되었대요여러 번 실패를 거듭했지만결국은 밀랍으로 인간을 만들어내요즉 창세여신도 실패를 거듭한 후에 마침내 인간을 만드는 거지요여신은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요굉장히 낙천적이고과정도 비극적이지 않아요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 비극적인 정서가 전혀 드러나지 않지요.

 

그러니까 동아시아 신화의 맥락에서 볼 때창세여신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낙천적이라 할 수 있죠제주도 창세여신이라고 하는 설문대할망의 비극적인 결말에 대해 당연히 아쉬움이 있어 논문을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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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행신도서관 김지희 사서 제공(김선자소장 강의에 집중한 참여자들)

 

질문지금 우리가 중국의 소수민족 신화와 동아시아 신화를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선자저는 신화의 힘을 지혜에서 찾습니다.「오래된 지혜」라는 책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인간과 인간의 관계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했어요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제도적 문제가 심화되고기후와 환경문제 역시 우리가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어요오래된 지혜를 쓴 것이 10년이 넘었는데, ‘오래된이라는 단어에 신화를 공부하면서 추구하는 것이 담겼어요지혜 담론은 사실 굉장히 오래된 담론이에요저는 신화를 지혜 담론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봤고서구의 지혜 담론이 담을 수 없는 동아시아의 지혜 담론을 만들 수 있다는 맥락에서 오래된 지혜를 집필했어요그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요신화 속에 들어있는 동아시아의 지혜를 통해 삶의 어려운 순간에 위로와 힘도전정신을 배울 수 있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질문그러면 이제 신화와 역사의 관련성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김영수 선생님의 중국 역사서 사기』 강의도 듣고또 다른 분의 사기』 강의를 들으면서 한동안사기에 푹 빠져있던 때가 있어요그런데 선생님의 책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어요사마천의 사기에 묘사된 황제가 이미 역사화된 것이라는 내용이 그것이었지요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 출간연도가 2007년인데, 2024년 현재 진행되는 중국의 역사고고프로젝트와 관련한 역사왜곡과 동북공정이 궁금합니다.

 

 

김선자오래전 이야기 중국신화』 개정판을 내면서 중국에서 진행 중인 <중화문명탐원(기원을 탐색)공정(프로젝트)>을 소개했어요그때까지만 해도 <중화문명탐원공정>이라는 역사고고프로젝트를 우리나라 학계에서 많이 연구하는 줄 알았어요그런데 우리 학계에서는 그 프로젝트가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았어요. 10년 넘게 중국에서 진행하는 역사공정을 파헤치는 연구논문이나 서적이 한국에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이상했어요중국에서 <중화문명탐원공정>에 앞서 역사연대를 정리하는 프로젝트인 <하상주 단대공정>(하나라상나라주나라의 역사연대를 올리는 프로젝트)을 먼저 했거든요. 1996년부터 2000년까지 5년 프로젝트를 끝내고, 2001년부터 이어진 게 <중화문명탐원공정>이예요. <하상주단대공정>이 끝났을 때서구학계와 중국학계가 엄청난 논쟁을 했어요서구학계는 연구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하고중국학계는 우리는 중국식 고고학을 한다며 치열한 논쟁이 붙었는데우리 학계는 조용했어요.

 

 

 

질문중국에 대한 관심의 부족일까요아니면 중국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어려워서였을까요?

 

 

김선자그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다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동아시아에서는 신화와 역사가 워낙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었기에 신화의 역사화’ 문제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공부를 해왔지요그런데 중국의 역사공정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 성과가 우리나라에 너무 적은 것을 보고실태를 알리겠다고 2년간 열심히 자료 수집을 했어요모든 자료와 결과물을 최대한 찾고관련 지역 답사를 다니면서 공부했어요.

 

 

 

질문:중국 자료나 결과물에 접근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어떠셨어요?

 

 

김선자쉽지는 않았지요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자료를 찾았고중화민족의 시조라고 하는 황제와 염제(炎帝)를 중심으로 구축한 기념비적 건축물들도 찾아다녔어요.지금 중국 어디서나 중화문명 오천 년이란 문구를 볼 수 있어요이전에 중화문명 오천 년이란 단어는 없었어요근대에 들어와 생긴 거죠. 1990년대 들어와 <중화문명탐원공정>을 시작한 궁극적 목적도 결국 오천 년 전에 황제라는 제왕이 있었고그 시대에 이미 중국은 하나였다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끊어진 적이 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죠그런 것들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어 쓴 책이 바로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입니다.

 

 질문굉장히 두꺼운 책이었어요워낙 방대한 분량에 지금껏 듣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낸 저작이라 몇 십 년 공들인 저작일 거라 생각했는데홀로 2년간 집중해서 답사하고 공부하셨다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어요그동안 신화학자로서 김선자 선생님 나름대로 역사를 치열하게 연구한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네요대중교양서로 쓰신 덕분인지 중국사를 모르는 제게도 술술 읽히면서도 중국역사공정의 과정을 깊이 들여다본 신기한 책이었어요분량이 많아 전체를 읽지는 못하고 발췌독을 했지만중국사의 면면을 분석한 혜안에 감탄했어요동북공정은 들어봤지만 역사공정은 생소했거든요.

 

 

김선자많은 분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대중교양서를 표방해 좀 쉬운 단어들을 사용해서 썼지만사실은 학술서적이죠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서적으로 선정되었으니까요동북공정과 역사공정은 따로 떼어서 말할 수 없어요그들은 과거 중국 땅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역사를 모두 중국 내부의 사건이라 보고 있죠중국은 고구려도 별개의 왕조가 아닌중원 땅에 당 왕조가 있을 때 중국 동북지방에 존재했던 소수민족정권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어요. 1990년대에는 소위 다민족일체론에 근거해서 중화민족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요중국 내 55개 소수민족이 사는데그것을 한족과 하나로 묶어 중화민족이라고 보는 거죠.

 

 

 질문그러니까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고구려를 중국의 동북지방에 존재했던 소수민족왕조로 편입시킨 중국의 관점즉 동북공정을 비판하는 거네요김영수 선생님의사기』 강의에서 동북공정을 중요하게 다루셔서 관심이 갔어요.

 

 

 

김선자사실 동북공정은 중국의 역사고고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역사공정 속에 있어요중국의 역사 왜곡에 관심 있는 시민들도 동북공정은 알지만 역사공정이란 말은 처음 듣는다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중국의 역사고고프로젝트를 전반적으로 봐야 동북공정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어요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를 2007년에 내고, 2017년에 절반의 중국사를 번역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절반의 중국사는 산둥성의 작가 가오훙레이가 썼어요.

 

고전문학에 대한 소양이 굉장히 뛰어난 분이라 책은 아주 잘 읽힙니다작가는 서쪽의 탕구트족남쪽의 여러 민족들북방의 흉노거란말갈 등 과거에 한족과 얽힌 거의 모든 민족의 역사를 썼어요그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면서 재미도 있어요어떤 분은 무협지 읽는 것처럼 흥미로웠다고 말씀하셨어요.

 

 질문절반의 중국사는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의 두 배 가까이 되는천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더군요인터뷰를 위해 선생님이 번역하신 절반의 중국사도 맛보기로 읽었는데정말 빨려 들어가더라고요특히 흉노와 돌궐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김선자절반의 중국사를 번역할 때 갈등을 좀 했어요저자가 굉장히 해박하고글도 무척 재미있게 썼는데시각이 문제였어요중국 관방(官方)의 시각을 확실히 대변하고 있었거든요그런데도 번역을 결심한 이유는 중국 관방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책이라서였어요적어도 이 책을 읽는 분들만큼은 중국 관방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실 것이기 때문이었지요.

 

중국 안에 존재했던 과거 모든 민족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고 흥미롭게 기술한 책이라는 점은 이 책의 미덕이에요재미도 있지요그래서 번역을 시작할 때는 충실한 번역자 역할만 하려고 했는데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역주를 달다 보니 거의 170쪽이 되었어요문제 되는 시각마다 역주를 달았고상세한 부분에서는 한국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도 많이 소개했어요.

 

 

 질문정말 어마어마한 각주더군요. ‘2의 창작이라고까지 불리는 번역가로서의 고충이 짐작이 안 됩니다천 페이지나 되는 중국 책 번역도 만만치 않을 텐데번역한 책을 반박하는 각주가 170쪽이라니요.

 

 

김선자분량도 엄청나게 많은데번역자에 비판자 역할까지 하려니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하지만 역사 이야기 속의 인물들에 빠져 아주 재미있게 읽으며 번역했습니다.

 

 

 

질문: 170쪽의 각주를 단 것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연구자들 논문을 소개하셨잖아요연구자들 논문을 소개하려면 또 읽어야 하잖아요이 놀라운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김선자호기심과 재미예요신화도 궁금하고 재미있으니까 했어요신화공부가 재미없었다면 지금까지 오기 힘들었을 거예요신화라는 학문이 다른 인접 학문과 다 연결되어 있어 더 좋았어요좋아하는 역사심리학인류학민속학 등 신화는 거의 모든 학문과 연결되어 있지요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공부라 호기심을 자극하니까 더 좋았어요.

 

 

질문선생님 말씀을 듣다보니 갑자기 궁금해졌어요선생님께 재미란 어떤 의미일까요사람들은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재미없다고 하는데선생님은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재미있다고 하셨어요선생님이 쓰신 책은 정말 방대한 분량인데요.

 

 김선자제가 궁금한 게 많은 거 같아요저건 왜 저렇지이건 뭘까새로운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읽고 나름의 의미 있는 답을 얻을 때 즐겁지요파고들고 몰입하는 성향이 두꺼운 책들을 쓰고 번역하는 동력이 되었어요궁금한 하나의 주제에 대해 열심히 찾아보고 생각하고 공부하면서 한 단계 마무리하면 책 한 권이 나오는 것 같아요지금도 관심을 갖고 자료들을 모으고 있는 분야가 있어요책으로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죠.

 

 

 

질문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책이라는 물성이 새롭게 다가옵니다한 신화학자가 수년간 고민하고 연구하며 써낸 힘든 과정의 결과물을 독자의 한 사람으로 혜택을 누린다고 생각하니 새삼 감격스럽습니다.

 

 

김선자제 책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제게는 더 소중하고 감사해요.

 

 

질문지금도 중국의 역사고고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겠죠선생님이 책 출간하신지 꽤 오래되었잖아요당시와 지금이 비슷한가요아니면 더 확대되었나요?

 

 

김선자더 확대됐죠황제(黃帝)의 예만 들어보더라도산시(陝西)성에 황제의 무덤이 있는데황제의 무덤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이 처음보다 점점 확장되고 있고그 앞에서 하는 의례의 규모도 커지고 있어요이제는 매체의 시대잖아요중국 내에 살고 있는 중국인 외에 전 세계에 퍼져있는 화인(華人)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구심점으로 지금도 황제의례가 작동하고 있어요.

 

황제를 중심에 두고 특히 중국의 내몽골지역에 적봉(赤峰)이라는 곳이 있고여기에 홍산(紅山)문화유적지가 있어요홍산문화유적지는 황하문명의 중심지인 중원지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요랴오둥(요동)반도 위쪽에 있지요오랫동안 오랑캐의 땅이라 여겼던 지역에서 중국의 제일 오래된 신석기시대 유적지가 발굴된 거예요. 1980년대쯤부터 발굴되기 시작했는데중국의 대표적인 신화학자가 홍산문화유적지가 황제족의 땅이고 그 황제족이 곰 토템을 갖고 있었다고 얘기해요우리 단군신화에도 웅녀곰이 나오는데 중국의 대표적 신화학자가 중국이 곰 토템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한 거죠황제족이 갖고 있는 곰 토템곰에 대한 숭배가 만주지역에 사는 퉁구스계통 민족을 매개로 해서 한반도까지 들어왔다는 식으로요홍산문화유적지가 황제의 땅이라는 논의를 만들어간 거죠제가 이것에 대한 비판적 논문들도 썼어요황제와 관련한 논의들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에요우리도 그것을 비판적 시각에서 계속 지켜보아야 합니다.

 

 

질문워낙 연구자의 내용이라 기사에 다 포함하지는 못하겠지만제게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일대일 중국신화 과외시간입니다.

 

 

김선자학생들에게 중국의 황제신화와 역사공정을 소개할 때 꼭 보충하는 말이 있어요신화를 민족의 역사나 문명을 증명하는 도구로 쓰게 되면지나친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의 덫에 빠지기 쉽다민족의 시조에 대한 신화 자체가 굉장히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데이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과학적이어야 하는 고고학이 역사학과 결합하면서 이데올로기가 된다그것은 매우 위험하다우리 단군신화도 같은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해요중국의 역사공정을 비판하는 것과 같은 잣대로 우리 신화의 이데올로기도 경계해야 하죠.

 

 

질문저 역시 건강한 역사의식과 객관적 시각을 갖도록 학생들을 교육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오래된 지혜』 책에서 신화가 강조하는 인간의 4가지 조건이 인상 깊었어요선량함지혜나눔성실함이 네 가지가 공동체사회를 유지하고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중요 덕목이자 가치라고 하셨어요최근 10대 여학생은 물론이고 여교사를 포함한 딥페이크 여성 성착취 영상을 텔레그램에서 24만 명이 만들고 본다는 거예요딥페이크 여성 성착취 영상을 유포하는 것을 넘어 협박하는 등 심각한 사회적 범죄로 대두되었어요특히 피해자가해자 대부분이 10대라는 사실과 전국의 초··고등학교 지도가 그려질 정도로 만연하다는 게 충격을 주는데요신화학자이자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선자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여성을 소수자나 약자로 여기는 시각이 아닌동등한 존재로 봐야 해요신화 속의 가치와도 통하는 거죠자연계의 구성원 하나하나가 인간과 동등한 생명의 가치를 가졌다고 하는 게 신화 사유의 근본이에요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나와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새기고 실천해야 해요자연계의 모든 존재는 생명이 있고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요인간의 언어만 언어가 아니죠새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건 오히려 인간이죠동네고양이 한 마리도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공존의식을 회복한다면 성폭력이나 비인간 존재에 대한 폭력은 줄어들 거예요.

 

저는 교육이 여전히 힘이고이야기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신화 속 이야기들을 통해 이야기는 힘이 세다는 걸 전하고 싶어요어떤 것을 하라는 가르침보다 이야기를 들려주면 체화하기 때문에 더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지요.

 

 

질문마지막으로 봉봉이와 코코의 집사로서 이 글을 읽을 고양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선자고양이 봉봉이와 코코의 집사로 살면서 동물은 물론이고 바람과 물나무 등 신화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가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다는 인식이 강화되었습니다모든 것이 각각의 존재가치가 있고동등하다는 걸 생활 속에서 깊이 경험해요신화학자로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는 넓은 가슴과 깊은 눈을 가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동아시아신화 공부가 여러분께 그런 삶으로 가는 등불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명한 신화학자이신 김선자 선생님께 신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감사합니다.

 

 

 글|김서연   사부작 사부작 웹진기자